제주도 여행하면 보통 흑돼지, 예쁜 카페, 올레길을 떠올리곤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름을 걷다가 문득 발밑의 구멍 뚫린 까만 돌과 붉은 흙을 보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제주의 지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실들을 마주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수백만 년 전에는 바다 밑이었다는 것, 그리고 제주 전체가 거대한 화산 폭발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지금부터는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제주의 풍경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해 줄, 제주 탄생의 비밀 6가지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이 내용을 알고 나면 오름을 오를 때, 해안가를 산책할 때, 동굴에 들어갈 때 느끼는 감흥이 달라질 것입니다.
1. 제주에는 산이 368개나 있어요 — 오름의 왕국
제주 하면 한라산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제주에는 360여 개의 크고 작은 산이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이를 ‘오름’이라고 부릅니다. 정확히는 한라산에 딸린 기생 화산들입니다.
처음 이 숫자를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지만, 제주 중산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양옆으로 봉긋하게 솟은 언덕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과거에 화산이었던 오름입니다.
다랑쉬오름이나 지미오름은 오름의 기본 형태로 불리며, 분화구 형태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정상에서 분화구를 내려다보면 ‘여기서 정말 용암이 분출했구나’ 하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름에 대해 알면 제주의 물 이야기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름은 ‘송이(스코리아)’라는 구멍이 많은 화산 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어 배수가 매우 잘 됩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제주의 소중한 지하수가 되는 것입니다. 제주에 큰 하천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숲, 곶자왈
제주에는 곶자왈이라는 독특한 숲이 있습니다. ‘곶’은 숲, ‘자왈’은 바위나 나무가 엉클어진 곳이라는 뜻의 제주어로, 쉽게 말해 용암이 만든 원시의 숲입니다.
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식으면서 쪼개지고 쌓여 만들어진 지형으로, 내부의 가스가 빠져나간 자리에 작은 동굴 같은 공간들이 생겼습니다. 이 틈새들이 보온과 보습 역할을 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환경을 만듭니다.
덕분에 곶자왈에서는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함께 자라는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보통은 한곳에서 볼 수 없는 식물들이 나란히 자라는 것입니다. 한국 양치식물의 80%가 이곳에 서식한다고 하니, 식물학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곳입니다.
곶자왈을 직접 걸어보면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끼 낀 바위 사이로 양치식물이 빽빽하게 자라고, 축축하면서도 상쾌한 공기가 가득합니다. 제주에서 숲 산책을 즐긴다면 곶자왈은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3. 200만 년 전 제주는 바다였어요 — 서귀포층과 패류 화석지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입니다. 서귀포 해안가에 가면 약 200만 년 전 제주가 바다였을 때 쌓인 지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서귀포 패류 화석지의 절벽 단면에는 조개 화석들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선명한 조개껍데기 모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서 있는 이 땅이 200만 년 전에는 깊은 바닷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간 감각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서귀포층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지층 아래에는 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유층’이 있는데, 이 지층이 제주 지하수가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고 고이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제주의 물 역시 이 독특한 지질 구조 덕분입니다.
4. 용암도 종류가 다르다고? — 파호에호 용암의 흔적
제주 동부와 서부 해안가를 걷다 보면 유독 표면이 매끈한 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표선리 인근에 많은 이 돌들은 그냥 돌이 아니라 파호에호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파호에호 용암은 점성이 낮아 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용암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표면이 매끈하고 독특한 무늬를 남기게 됩니다.
해안가에서는 새끼줄을 꼬아놓은 듯한 구조나, 빵이 부풀어 오르듯 솟아오른 ‘투물러스’, 가스 압력으로 갈라진 ‘프레셔 리지’ 등 다양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지형들이 이곳이 용암이 흐를 당시에는 바다가 아닌 육지였다는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수만 년 전에는 내륙이었던 곳이 해수면 상승으로 지금의 해안선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해변을 걸으면, 돌 하나하나가 마치 타임캡슐처럼 느껴집니다.
5. 뜨거운 용암이 강처럼 흘렀던 곳 — 만장굴
제주도 전역에는 100여 개의 용암 동굴이 있으며, 그중 으뜸은 단연 만장굴입니다.
만장굴은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용암 동굴로,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그 웅장함에 압도됩니다. 동굴 벽면에는 용암이 흘러간 자국이 마치 강물이 지나간 것처럼 층층이 새겨져 있어, 뜨거운 용암이 이곳을 가득 채우고 흘렀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내부에서는 용암 선반, 천장에서 용암이 떨어지며 굳어 만들어진 용암 석주 등 경이로운 구조물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굴 안은 한여름에도 서늘하므로 긴 소매 옷을 챙기는 것이 좋고,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편한 운동화를 신는 것이 필수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다면 용암이 흘렀던 이야기를 해주며 교육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6. 제주가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 — 탐라층
마지막 비밀은 제주도가 과거에는 한반도 육지와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서귀포시 남원읍 토산리 등지에서는 ‘맥석영’이라는 하얀 자갈이 발견됩니다. 이 돌이 중요한 이유는, 현무암 지대인 제주에서는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없는 화강암질 암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학자들은 약 50만 년 전 대홍수 때 한반도 육지에서 물과 함께 밀려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 제주와 육지가 연결되어 있었거나 매우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
이 자갈들이 쌓여 만들어진 지층을 탐라층이라고 부르며, 이 층은 현재 제주 농업의 중요한 터전이 되고 있습니다. 밭에서 감귤을 따면서 발밑의 흙이 50만 년 전 대홍수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로울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지질 여행이라는 말이 다소 딱딱하고 재미없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제주의 지질 이야기는 한편의 거대한 SF 영화와 같았습니다. 바다 밑에서 솟아오른 섬, 360개가 넘는 화산, 강물처럼 흘렀던 용암, 그리고 한반도와 이어져 있던 과거까지, 모든 것이 경이롭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나면 제주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름 정상에서 바람을 맞을 때, 해안 절벽을 바라볼 때, 동굴 안을 걸을 때, 단순히 ‘아름답다’는 감상을 넘어 ‘이 풍경이 수백만 년의 시간을 거쳐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깊이 있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다음 제주 여행에서는 카페 방문을 한 번 줄이는 대신, 서귀포 패류 화석지나 만장굴 같은 지질 명소를 일정에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한 곳의 경험이 여행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